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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24
TRPG 백업 최신식상조서비스:기억이전하드 2024. 4. 24. 18:02

 

 

 

최신식상조서비스:기억이전하드 w.갯강구
 

[CoC] 최신식상조서비스:기억이전하드 : 포스타입 포스트

익명의 지인분께서 지원해주셨습니다. 저장 및 개인사용 허용 / 수정·재배포·자작발언 불가 개요 KPC가 죽은 지 몇 주 후. 당신 앞으로 외장하드 하나가 배송되었습니다. 컴퓨터에 연결된 외장

sea-slater.postyp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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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 데이븐포트가 죽은 지 2년 조금 지난 후.
당신 앞으로 외장하드 하나가 배송되었습니다.
컴퓨터에 연결된 외장하드는 심장박동처럼 진동하며 빛을 냅니다.
그리고, 파일 탐색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사람을 이루는 것은 기억일까요?
그렇다면 당신 앞의 저장장치도 케인 데이븐포트라고 할 수 있을까요?
[최신식상조서비스:기억이전하드]
kpc 케인 데이븐포트
pc 서건우
writer 갯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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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현관 문을 열어보았을 뿐입니다.
시킨 적 없는 택배가 문짝에 턱 하고 걸려버렸네요.
그러나 수신인의 이름과 주소는 분명 서건우, 당신의 것입니다.
:택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건우:… (이 주소를 아는 사람은 없을텐데. 도대체 누가, 뭘? 미묘한 표정으로 택배를 주워들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택배를 가지고 안으로 들어와 뜯어본다.)
:발신인과 주소는 확인해보나요?
서건우:(택배 상자를 가볍게 쓸어보다가 운송장을 확인해보았다.)
운송장을 확인해본다면...
발신인에는 '케인 데이븐포트'
주소는... 그가 지내던 집과 다른 주소가 적혀있습니다.
서건우:(이름을 확인한 순간 덜컥, 몸이 굳는다. 왜 이 이름이? 손 끝에 떨림이 느껴진다. 머리 이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다. 떠내보냈어도 여전히 뇌리에 깊게 박힌 이름과, 낯선 주소. 어느 누군가의 악질적인 장난인가, 하는 생각에 입을 꾹 다물었다가 천천히 테이프를 뜯어내었다.)
택배를 적당한 곳에 올려놓고,
박스의 테이프를 뜯어냅니다.
그 안에는... 단번에 알 수 있군요.
외장하드와 엽서 한 장입니다.
서건우:(택배 안을 들여다보아도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엽서를 꺼내어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엽서를 살펴본다면...
'본사의 서비스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케인 데이븐포트 님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할 것입니다.'
단단하고 두꺼운 미색 종이에 고급스럽게 인쇄된 것이 초대장 같다는 감상을 줍니다.
외장하드도 살펴볼까요?
서건우:(엽서의 내용은 더 악질이었다. 도대체 누가, 이게 뭐길래. '케인 데이븐포트 님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할 것입니다.'? 엽서의 글씨를 제대로 읽기 어려울 정도로 손이 떨려서 반댓손으로 손목을 쥐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게 무엇이든 간에 내다버리고 싶었으나, '케인 데이븐포트' 라는 이름에 차마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외장하드로 손을 뻗는다. 어쩌면, 내가 멀쩡하게 사는 꼴이, 누군가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은 거겠지… 속으로 하는 생각 사이 사이가 뚝뚝 끊긴다. 잡념인지 과거의 파편인지 모를 것들이 끼어드는 것을 참아내며 외장하드를 살펴보았다.)
평범한 외장하드입니다.
외관상으로 특별한 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컴퓨터에 연결할 수 있는 선이 동봉되어 있습니다.
외장하드를 받아들고, '케인 데이븐포트' 의 이름을 읽었다면...
지능 판정
서건우:(외장하드라는 건 저장장치겠지. 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면서, 열어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치솟는다. 그럼에도 손은 여전히 외장하드를 붙든 채였다.)
지능
기준치:60/30/12
굴림:91
판정결과:실패
여전히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야... 케인은 죽었잖아요?
그의 노트북이나 휴대폰에서 미처 처리하지 못한 자료가 있었던 걸까요?
일단 당신에게로 온 것은 확실하니, 외장하드를 열어보도록 할까요.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확인해야 수신인의 도리를 다 한 셈일테니 말이죠.
컴퓨터에 연결하러 가나요?
서건우:(아, 또 식도가 시큰거린다. 속이 울렁이는 감각도 수백번을 넘게 반복했으면 익숙해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건만, 몸은 여전하다.
느릿하게 심호흡을 하다가 노트북을 꺼내들었다. 택배 상자를 한쪽으로 밀어내고 노트북을 올려 전원을 켰다. 켜지는 동안에도 테이블 위로 손가락이 가볍게 툭, 툭. 일정한 소리를 낸다. 기껏 켜진 노트북에 외장하드를 연결하려는데 손이 떨려 몇번이 빗나갔다. 인상을 찌푸리며 겨우 연결한다.)
PC를 켜고 외장하드를 연결합니다.
외장하드의 상단에 불빛이 들어오고, 낮게 진동이 울립니다.
그 진동음이 심장박동처럼 규칙적으로 들리는 것은 역시 기분탓이겠죠.
컴퓨터에 연결된 외장하드가 프로그램에 의해 한 번 스캔되고,
곧장 파일 탐색기가 열립니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 ■■■■■:...누구세요?
예상했듯이, 케인의 것입니다.
서건우:(몸이 굳는다. 외장하드의 진동음과 같이 규칙적이던 심장박동이 갈피를 잃고 제멋대로 굴기 시작하면 숨이 가빠온다. 누구냐고? 내가, 내가 누구냐고…? 양손이 얼굴을 덮는다. 두 다리를 딛고 세상에 발 붙여 살기 시작한 것이 무색하게 다시 바닥으로 꺼지는 기분을 느낀다. 한없이, 아래로… …)
…케인? (누구냐는 물음에 대한 답 대신, 아닐리가 없는 상대에 대한 질문을 건넨다. 정말, 당신이에요?)
■■ ■■■■■:...케인? 제 이름이 케인이 맞나요? 죄송합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고 있어서요. 제가 죽어서 데이터 화 된 사실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 이외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당신이 알고 있는 저에 대한 것을 말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서건우:(아, 꼭 살아있는 것 같아. 이 목소리가… 그 때의 기억들이… 현실은 아득해지고 과거의 어느 무엇들과 마주하며 한참이나 침묵을 지켰다. 내가 아는 너는, 과연 너였을까? 심지어는 내가 본 너를 머릿속에 담아둔 이 기억들이 정말 정확하게 남아는 있는 걸까? 턱이 떨린다.) …왜, 저한테 온…건가요? 당신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게 나한테 와서는 안 됐는데…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아요.
■■ ■■■■■:죄송하지만...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 이유도 나중에 기억을 전부 되찾게 된다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착오가 있더라도, 일단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절 알고 있는 분인 것은 확실한가 보네요. 저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을 부탁 드릴게요. 어... ... 이름이... ...
서건우:…서건우요. 아니, 잭인가… 당신한테 내가 뭐로 남아있을지 모르겠는데…. (케인 데이븐포트의 목소리로 들려오는 부탁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도 여전히, 한없이 아래로 꺼지는 감각 속에서 말을 잇는다.) 자, 자신은 없거든요. 그러니까, 저… 횡설수설할지도 모르는데… 괜찮, 을까요.
■■ ■■■■■:... ... (살짝 화면이 지직거린다. 무언가가 기억난 듯한 반응인지, 아니면 그 이름자체에 무언가 오류가 있는 건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서건우, 잭. 들어봤어요. 네... 들어본 것 같아요. ... ...근데 잘 기억이 안나요. 너무 기억하는 게 없어서 그런 걸까요?
...제 이름도 정확히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서건우:(도망치고 싶다. 아니, 딱히 지금만 그런 것도 아니었지 싶은데. 시선을 내리 깔다못해 테이블 앞에 잔뜩 웅크리고 앉아 입을 열었다.) 케인 데이븐포트. 영국 출생이고… 제가 처음 만났을 때에는 영화 감독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화가로 전향했고… ….
케인 데이븐포트:...아... 뭔가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 같아요. ...영화 감독에서 화가로 전향... ...
...당신이 기억하는 저는 어떤 모습인지도 알려주세요.
서건우:그냥, …세상 모든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 가끔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고… 바보같이 착한 사람들과는 결이 달랐지만, 분명히 선하고 좋은 사람이었어요.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라면 그게 뭐든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또…
그냥,
… 나는…
(그러지 말 걸. 그러지 말았어야했는데. 너무나 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이미 늦었다' 는 핑계로 얼마나 심한 짓을 이어왔던가. 역겨움을 참지 못해 헛구역질을 하다가 양손을 꾹 붙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목을 죄다 파내버릴 것 같았으니까.)
…괜한 일에 휩쓸린 안타까운 사람.
서건우:…미, 미안해요.
케인 데이븐포트:... ... ... (괜한 일... 무언가 생각날 것 같았지만, 순간순간의 장면들이 데이터 화 된 것 마냥 글리치 효과가 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이게 '느낌'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인가? '케인 데이븐포트' 는 한낱 데이터에 불과할 텐데... ...한참 동안 조용해졌다가 생각을 어느 정도 끝낸 건지 다시금 말을 걸었다.) 당신의 말을 듣다 보니 뭔가 뜨문뜨문... 기억나는데, 사람들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아요. ...아, 제 얼굴조차 흐릿한 느낌이라... 머리에 먼지가 낀 느낌이랄까... ... 제 외관은 기억하시나요?
서건우:….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겠다. 빠른가 하면 느리게, 느린가 하면 빠르게. 귓가에 들려오는 심장 박동 같은 진동음에 집중하려 애쓰며 정신을 현실에 붙들어놓는다.)
검, 검은 머리… 원래는 검은 머리였어요. 크루즈에 탔을 때에는 염색을… 색이 진한 느낌은 아니고, 그냥, 좀… 보라색 같은 파란색이었는데. 머리는 항상 깔끔했고, 눈매는 적당히 서글했고… 눈가가 좀 깊었어요. 옷도 단정했고… 아, 눈색이 분홍색이었나…
(머릿속으로 얼굴을 그려나간다. 이 얼굴이 흐릿한 것은 너 뿐만은 아니리라. 비겁하게 잊고 살던 얼굴을 다시 그려낸다. 흐리고 뿌옇게 남아있던 자리에 안개가 걷힌다.) 전체적으로 인상이 좋았어요. 호감상이라고 해야하나… 표정에 따라 분위기가 좀 바뀌긴 해도… …예.
까맣던 화면은 차츰 당신이 기억하는 '케인 데이븐포트' 의 모습을 띄웁니다.
당신이 기억하는 사람의 모습이 맞나요?
케인 데이븐포트:...음... ... 네, 기억났어요. 이렇게 생긴 게... 맞는 거죠? 혹시 당신이 기억하는 모습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서건우:(느릿하게 고개를 든다. 화면을 채우는 '케인 데이븐포트'의 모습에 숨이 멎는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감각. 손을 뻗어 화면에 닿으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 손을 거두었다. 정말, 꼭, 살아 돌아온 것 같아서, 그래서….
갈수록 수척해지던 모습, 예전과는 다르게 누구와 있어도 거리감이 느껴지던 표정. 하나씩 더듬어 얼굴을 그려낸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얼굴에 가장 가까웠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아. 결국 또 순간의 헛구역질을 참아내지 못했다. 목이 시큰하다못해 아린 기분을 느끼며 답했다.) …맞, 아요. 이 얼굴… 이랬는데… 진짜 케인이네요.
케인 데이븐포트: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살짝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 웃음이 자신의 모습을 찾아내어 기쁜 것 이 아닌 그냥 외장 하드에 입력되어있는 수치 값으로 계산된 표정인지... 아니면 정말 생전에 남들에게 예의를 갖추며 대할 때 웃음을 짓는 모습도 그대로 남은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혹시 서건우 씨는 제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시는 바가 있나요? 그것 또한, 제 기억 복구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서건우:(웃는 낯을 보니 덜컥, 무언가가 내려 앉는 기분이 든다. 시선을 피했다.)
수, 수술을… (그럼 이제 왜 수술을 받았느냐고 물을 차례인가? 어디가 아팠느냐고? 네 아픔에 일조한 사람이 나라고? 하나씩 차근차근 내가 저지른 일을 이 앞에 낱낱이…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으나 나는 여전한 구제불능인지, 이 상황을 피하고 싶다는 의지만이 남아… 눈시울이 붉어진다. 온 몸을 한참 구겨 웅크린 채 중얼거린다.)
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입원을… 그러다가, 수술을 받던 중에… …안, 안 물어보면 안돼요? 나, 나는, 나는 어차피 장례식장에도 못 갔는데…
케인 데이븐포트:(아 그래, 뭔가 ... 몸이 약했었던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사망 3년 전부터였던가... 병 때문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었다. 그런데... 뭔가... 뭔가 비어져 있다. 뭐지? 이 사람에 대한 기억일까?) ... ... 장례식장에 못 왔다고요? ...당신이 이렇게 제 기억을 받을 정도로 깊은 사이였다면... 왔어야 하는 게 맞지 않ㄴ... 아, 그래요. 사람마다 사정은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럼 당신과 제 사이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서건우:(이럴줄 알았어. 이럴줄 알았다고. 웅크리다 못해 손 끝에 힘을 잔뜩 준 채 팔을 긁기 시작했다. 제 의지든, 아니든간에.) …그냥, 최악이었어요. 사이라고 할 것도 없어… 나는, 내가, … ….
(울지마. 네가 뭘 잘 했다고 울어. 제발 피해자처럼 굴지좀 마. 눈을 꾹 감고 몸을 조금 더 움츠렸다가 억지로 펴낸다. 언제부터인지 모를 떨림과 함께 겨우 고개까지 들어 화면을 마주한다. 코와 입, 그 위로는 차마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엮이는 게 미안할 정도의 사이였어요. 당신과 나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사이였으니까…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짓들을 당신에게 쏟아붓고 저질렀어요.
케인 데이븐포트:...아, 피해자와 가해자... ... (네 말에 마침표가 찍히자마자, 무언가의 기억이 스크린에 띄워진 이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잭, 서건우에 대한 기억은 그에게 괴로운 기억임이 틀림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마냥 화면이 잠깐 멈추더니 까만색의 배경, 인물의 일그러짐 등등 여러가지 오류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가 스크린에 띄워진 모습이 전부일 지라도 어찌 되었던 감정과 기억이 있는 존재 였다.)
(오류창이 하나, 둘 없어지더니 점점 안정을 되찾아 가는 것 마냥 그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이 완전히 복구 되었다.) . ...기억났어요. 아,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 당신에 대한 일은 아마도 전부요. ...이런 모습으로 만나게 될 줄 당신도, 저도 몰랐을 거에요. ... ...그래도 죽기 전, 당신과 한 번 쯤 대화해보고 싶었으니, 어떻게 기회를 얻었네요.
...어떻게 지냈어요? 제가 당신 먼저 죽은 것에 대해 실망했나요?
서건우:(온갖 오류로 점철되어가는 화면을 보고 있으려니 다시금 뼈저리게 느껴진다. 그저 외장하드에 담겨있을 뿐인 너도 이런 반응인데, 현실의 너는 어땠을까. 그리고 왜 난 그걸 똑바로 보지 못하고 늘 곡해했을까… 아니, 애초에 제대로 바라볼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지금 당장 뛰쳐내려 모든 걸 끝내고 싶은 마음과 되려 차분하게 가라앉는 마음이 공존했다. 나의 최악에 대해 인정하는 것은, 이상하게 도움이 되고는 했으므로. 네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깜빡일 때마다 속에서는 서건우를 난도질해나갔다.)
…당신이 나와 대화를 해보고 싶었다는 것도 놀라운데요. 영원히, 털 끝 하나 보고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깜빡, 깜빡.)
…제가 뭐라고 실망을 해요? 이런 소리 듣고 싶지 않겠지만, 잘 살아요. 멀쩡하게 먹고, 자고, 평범하게요. (남의 삶을 그렇게 망가트려놓고… …깜빡.)
…정말 내 얘기가 궁금해요?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거나…
케인 데이븐포트:...아뇨, 그냥... 하고 싶은 말도 있고, 당신 이야기가 듣고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모습인 게 보여서 이제야 좀 정상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괜찮죠? 뭐 싫으면 그냥 코드 뽑아버리고 폐기해도 괜찮아요. 어차피 전 죽은 사람이잖아요? 마지막 데이터가 당신에게 와버렸는데 이 정도는 감수하고 있다고 알려주는 거에요.
...정말 정직하게 당신이 말한 것 마냥 지낸 것은 아닐 테고. 컴퓨터에 입력되어있는 정보를 보니 제가 죽은 후... 약 2년 정도 흘렀네요. 그 2년 간 많은 감정이 오고 갔을 테죠. ...당신이 여기는  이 죽었을 때, 어땠어요? 그때서야 제가 신이 아님을 느꼈나요?
서건우:('정상적'인 대화는 뭐지? 아, 그래도 확실히 예전의 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냥 짐승이지… 눈이 느릿하게 테이블 위를 구르다가 다시 네게로 돌아온다. 왜, 그런 말을…) …제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해요?
(어차피 전 죽은 사람이잖아요라는 말이 속을 쑤신다. 눈물이 날 것 같아 이마를 짚어 눈을 가렸다. 가만히 또, 네가 하는 말을 듣다가… 눈을 깜빡이고… 자꾸 제멋대로 날뛰는 숨을 진정하느라 어깨가 크게 들썩거렸다.)
그 당시, 에는… 정확히 기억이 잘 안나요. 무슨 생각을 해서 어떻게 움직였고… 그런게… (짐승이 생각이랄 게 있었을리가. 실망을 했던가? 적어도 울부짖기는 했던 것 같다. 네 죽음을 인정하지 못했고, 그리고…) 꿈을 꿨거든요. 아마 내 마음대로 꾼 꿈이니 당신 마음에 들지는 않겠지만… 꿈에서 꼭, 당신이… 죽었어도 죽지 않은 것처럼… 나를 죽여준다고 해서 나는 거기에 또 매달렸어… (시선이 화면에 닿아있어도 정작 보는 것은 허공이었다. 정확히는, 과거의 어느 부분.)
당신 작품을 닥치는대로 모았어요. 그러다 저지르면 안될 짓까지 저지르고… 당신이 신이 아니라는 걸 느끼고, 인정하는 건… 그 다음이었지. 나는, 신일리가 없는 사람을 억지로 끼워 맞춘 거야. 나 좋자고. 나만 괴롭지 않으면 되니까. 죽도록 후회한다 말은 잘 하면서 그 순간에도 내 살 길만 찾은 거지… 한번도, 그렇게 단 한번도 당신 생각을 하질 않았어… (상대에게 건네는 말인지, 혼자서 늘어놓는 말인지 알 수 없이 모호한 문장이 흘러나온다. 말을 하는 동안 현재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이 분리된다. 아, 이러면 안되는데. 저것도 다 나인데. 받아들여야만 하는데… 양 허벅지를 짚은 손 끝에 힘이 바짝 들어가 살이 패인다. 나는 나아진 게 없는 사람이구나. 실망감 끝엔 무력감만 남는다.)
케인 데이븐포트:(그의 얘기를 듣고 나니 과거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일단 이전에 본 그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다. 자기 합리화에서 나오는 이전에 했던 사과가 진심이 담긴... 그 무언가.
스크린 속의 케인은 그의 사과가 사람에게 표현하는 사과가 아닌 마치 에게 표현하는 고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앞에서는 신이 되어야 했기에 이런 생각이 드는 건지 아니면 아직 그를 믿지 않는 건지 케인 본인조차 알 수 없었다.)
일단... 처음엔 죽음을 부정, 그 죽음을 부정하기 위해 당신이 이라 여긴 이의 물건들을 모으고 ...그 후에는 어떠한 계기로 스스로 모든 게 아님을 깨달았다. ...제가 이해한 게 맞죠? (스크린 밖에서 ■■의 자세로 고개 숙인 이를 보았다. 그와 첫 만남부터 차근하게 되짚어 본다. 그가 앞서 말했 듯 나는 그저 괜한 일에 휩쓸린 안타까운 사람 이었다. 그가 알아 주었으면 했던 것을 내가 죽은 후에야 깨닫게 되다니, 아... ... 알 수 없는 감정이 느껴진다. 생전 느껴본 적 없는... 평생 가둬 두었던 무언가가 쏟아지는 느낌. 기계에 갇혀있는 주제에 이런 감정을 느껴도 되는 건가 싶었다.)
...저 없는 2년 동안 당신이 열심히 후회하고 속죄했겠지만, 알아주는 이가 죽어버렸으니... ...그래도 지금이나마 이렇게 전하게 되었으니 다행이네요. 저는... 그냥 그거면 됐어요. 평생 지금처럼 속죄하며 살 필요도 없고, 육체도 없는데 뭘 더 원하지도 않고...
그냥... 당신 인생에 저만 없애주세요. 알잖아요, 전 남의 인생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해요. 물론 당신은 저와 다르게 사람이라 힘들겠지만, 제 존재를 잊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세요. 그게 제 할 말이에요.
서건우:…죽음을 부정한 건 맞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로 당신이 신이라고 믿었어요. 죽음으로써 더 완벽한… 신이 되었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신의 흔적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당신의 의지가 가장 많이 깃든 물건을… (화면을 보는 듯, 여전히 허공을 쳐다보며 입을 열면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어떠한 계기란 무엇이었던가. 그 또한 나의 꿈이었다. 누군가는 그게 악몽이라고 할 수도, 내 무의식이 반영된 그저 꿈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어땠지? 분명 그 꿈에 케인이 깃들었다 생각했다. 그 사실을 당연하게, 지금에 와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가… …나는 정말 너를 떠나보낸 것이 맞나? 이 모든 것이 결국에는 내가 편해지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우습게도 뒤늦게 깨닫게 된 순간 모든 할말을 잃어버렸다. 너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정말 너를 위한 것이 맞는지, 스크린 속의 너와 마주해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사과를 건넨 마음 조차 너를 생각한 것은 맞는지. 머릿속이, 마음이 차근차근 무너져내린다.)
…당신이 이해가 안 돼… (도대체 뭐가 다행이고, 뭐가 그거면 되었다는 건지. 결국 네게 주어진 것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고, 너는 살아돌아올 수 없으며, 이런 말을 들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길래. 네가 원하는 유일한 것은 늘 사소한 것이었으나 내가 그걸 이뤄준 적은 없었다. 너는 그저, 그만둬주기를 바랐고, 남은 생 동안 서로의 얼굴을 볼 일이 없기를 바랐으며, 이제는 네가 떠난 세상에서 더이상 너를 붙들고 있지 말아달라고, 그런 최소한의 부탁을 하는데도 나는 도무지 그 말을 들어주지를 않아서….
결국 이 대화는 어떤 의미가 있었던 걸까. 어떤 한 이기적인 사람이 마음을 놓고 홀가분하게 살아가는 데에 일조하기 위해서? 목 안쪽에서부터 뜨끈하게 달아오르는 감각이 어느샌가 눈에서 뺨으로 눈물이 흐르고 있음을 알려준다. 턱에 매달린 물이 모여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졌다. 나는 왜 울고 있는 거지? 당최 이해가 되는 게 하나도 없다.)
… …당신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아. 나 같은 거 말고, 좀 더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할 사람들. 정말 마음 깊이 당신을 생각해주는 사람들… 내 생각에는, 그들에게 당신을 보내주는 게 좋겠어. 이건 아닌 것 같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목소리는 떨리고 잠기다못해 울음을 먹어 볼품없이 겨우 의사를 전달할 정도로만 나올 뿐이었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내가 좋자고하는 이기적인 일이라 감히 내가 당신에게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잖아….
(말을 꺼내면 꺼낼 수록 울음이 깊어진다. 어깨가 떨리다못해 잔뜩 움츠리면, 목 밖으로 소리를 내지 못해 끅끅 참는 소리만 들려왔다. 팔을 들어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서건우:…미안해, 죄송해요, 미안합니다… …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 주어조차 꺼내놓지 않고 사과만을 되풀이한다. 고장난 라디오처럼. 이것도 결국 너를 불편하게 만들텐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멈추질 못했다.)
케인 데이븐포트:... ...이제 그런 말은 괜찮아요. ('데이터' 로 남아있는 주제에 그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가에 대해서는... 글쎄다, 과거에 인간의 형태를 지녔던 케인 데이븐포트와 지금 화면에 띄워져 있는 케인 데이븐포트와는 별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앞에서 우는 이의 감정을 제멋대로 해석해 도출하자면, '슬픔' , '후회' , '고통', ... ... 그리고... 해석할 수 없는 무언가의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 만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문득 '데이터가 되어도 아스퍼거 증후군은 끝나지 않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육체가 아닌데도 이 병은 데이터로 남아 죽어서 까지도 사람의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말은 즉슨 '서건우는 변했지만 케인 데이븐포트는 변하지 못했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게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데이터의 차이였을 지도 모르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전 죽었어요. 남들에게 돌아가봤자 인간의 모습이 아니잖아요. 쉽게 말해서, 연결 코드만 뽑으면... 더 이상의 활동이 불가능해지는 데이터 쪼가리일 뿐이에요.
돌아갈 수 없어요. 당신도 잘 알잖아요. 물론 저도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싶지만... ...글쎄요. 이 자체가 기만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고, 뭐... 더하게 생각하면 계속 절 켜놓고 사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죠. 그래서 당신이 절 받은 걸지도요. 당신이라면 제가 부탁한 모든 걸 들어줄 수 있을 거 아니에요? (물론, 예전이라면 아니었겠지만... 자신이 죽은 2년 후, 다름 아닌 그가 자신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죄책감 가지지 마세요. 앞서 말했 듯이 그냥... 잊고 살아요. 내가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뭐, 지금도 실제로 없긴 하지만... 하하. 조금 잔인한가. 하지만 맞잖아요? 당신은 계속 살아갈 사람인데 세상에 없는 사람에게 매일 죄책감을 느끼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인 걸요.
서건우:(미안하다는 말을 해서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는 와중에 생각했다. 이런 짓을 그만해야하는데. 하지 말라는데도 굳이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늘 언제든 몇번이나, 매 모든 순간에 멈춰야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한 적은 없었다. 정말 지긋지긋하지만, 동시에 내다버릴 수가 없는 것이었으니. 이미 한껏 젖은 소매를 들어 눈을 우악스럽게 닦아내면 살갗이 따끔거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대신 입을 다물고 네가 하는 말을 듣는다. 그래도 여전했다. 이해가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 는… 네가 부탁하는 걸 들어준 적이 한번도 없잖아. 내가 살면서 네게 준 거라곤 온통 끔찍한 것들 뿐이지. 늘 실망하게 하고… 기억이 난다며. 그런데도 나를 믿어? 나는 이번에도 네가 부탁한 걸 들어주지 않겠지. 네 말을 어기고, 연결 코드만 뽑으면 활동이 불가능해지는 이 데이터 쪼가리까지 실망시킬 예정이야. 당연한 거 아니야? 나는, 난, 그렇게 태어났잖아…. (속이 뒤집어질 때에 그걸 참지 못하고 내뱉는 성정까지도 전과 같았다. 나는 이렇게 달라진 게 없는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쉽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태생부터가 잘못 되었으니 그런 부모를 만나는 것도 당연하지. 가정폭력을 당하며 컸다고 해서 모두가 나처럼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살아온 내내 내가 방패로 삼았던 것들이, 실은 그 어느 것도 내가 한 행동들을 정당화시켜줄 수는 없다는 사실도. 예전부터 알았지만 그에 대한 반발을 갖는 대신 이제는 인정하기로 했다. 놀랍지도 않을만큼 구질한 인간. 여전히 울음기가 가시지 않은 목으로 말을 잇는다.)
힘들면 뭐? 나같은 놈은 좀 힘들게 살아봐야한다고 생각해. 나는 이미 한번 너를 잊었어. 내가 편하자고. 내가 숨 쉬고, 땅에 두 발을 붙이고 살겠다고. 너는 이미 이 세상에서 죽고 없는데, 네가 웃으며 나를 보내줄 거라고 생각하면서 뻔뻔하게 살아남은 거야. 그래놓고는, 이걸 봐. 너와 말 몇마디 나눈 걸로 벌써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한 사람인 것처럼 굴고 있잖아. 나는 앞으로 더이상 너를 연결하지 않겠지, 그러면서 평생 내내 너를 떠올릴거야… 이러는 순간에도 차라리 네가 나를 원망한다면 좋았을텐데,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어.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 땅이 계속 가라앉아… 입을 다문채 속으로 너에게 건넨 말이었다. 살려달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지닌 문장이었으며, 제 뻔뻔함에 기함을 토했다. 네가 방법을 제시해주었는데도 들은 체도 않는 주제에 감히… … …물 속에 갇힌 것처럼 숨이 막히고 호흡이 가빴다. 누가 조르는 것도 아닌데 목을 긁는다. 숨 쉬게 해줘, 제발…)
…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어떻게… (마치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케인 데이븐포트:...글쎄요.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걸까요.
(아무래도, 우리는 다르면서 비슷한... 결국은 같은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겠지. 케인 데이븐포트는 서건우에게는 피해자였지만, 그의 친 형인 카일 데이븐포트에게는 가해자였다.
이와 비슷하게, 서건우 또한, 그의 아버지에게는 피해자였지만 케인 데이븐포트에게는 가해자였다.
우리는 비슷한 듯 달랐다.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도 그러한데,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비슷할까.
네가 나에게 전례 없는 후회를 하듯, 나 또한 전례 없는 사과를 할 것이다. 나의 외로움이 나와 엮은 이에게서 다시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
제가 죽기 전 까지 당신이랑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가 될까요? 저는 당신에게 피해자였지만, ...죽은 형에게는 가해자였거든요. 물론 당신처럼 악의가 있진 않았어요. 아니... 저도 모르게 악의를 품고 있었을 지도 모르죠. 저는 제 자신조차도 파악 못했던 한심한 인간이니까...
케인 데이븐포트:형이 죽어 서야 몇 년 후에 알게 되었어요. 제가 한 짓이 형을 자살로 몰아간 것을. 저 때문에 죽은 거에요. 유서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고요. 죽고 나서 후회 했어요. 죽은 형에게 가서 사과도 했고요. 하지만... 그게 전해질 리가. 그냥 죽기 직전까지 형에 대한 죄책감에서 허우적 대다가 죽었어요. 그냥... 그게 너무 괴롭고 외로운 걸 아니까... 저는... 어찌 되었던 당신은 저와 엮인 사람이잖아요. 이런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아무리... ... 그런 사람이라 해도... 저는 인생에서 이 일이 제일 괴로웠거든요.
...이해해 줄 것까진 없어요. 그런 일이 있었어서... ...말해 본 거에요.
서건우:(네 말을 들었어도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너였다면, 그랬다면… 나는 그런 일과 별개로 나를 용서하지 못했을텐데. 네가 말해줌으로써 뼈저리게 다시금 깨닫는다. 너와 나는 다른 사람이다.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겪어도, 생각을 하는 것을 떠나 드는 감정마저도 이렇게 다르니,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는가. 같은 부류는 커녕 그저 우리는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라는 사실만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너는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데도 나는 이해에 집착한다. 나도 어떻게든 너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될 수 없는 것을 갈망하며 그렇게.)
…그렇게도 괴롭고 외로운 사람이 발 붙일 곳조차 없게 계속 낭떠러지로 밀어낸 게 나잖아. 넌 그런 사람에게, 괴롭지 말라고 하는 거야. 적당히 말 몇마디로 끝낼 수 있는 상황에도 그렇지 않잖아… 내가 어떻게 살든 네가 무슨 상관이라고.
(좀 더 뻔뻔하게 대할 걸. 너를 보고 비웃어줄 걸. 네 얼굴을 보고 불쾌해하며 욕이라도 할 걸 그랬다. 그랬다면, 어쩌면, 그러면 그 때에는 너도 금방 나를 포기하고 그럴 줄 알았더라며 고개를 젓고, 여전한 내 꼴에 실망하고 대화도 끝나버렸을텐데. 모질게 굴던 모습은 모두 내가 네게서 억지로 끌어냈던 면이었다는 걸 상기한다. 네게 알겠다고 대답하고 이 작은 화면을 덮은 채 내멋대로 살면 그만일텐데 난 왜 계속 너에게 말을 걸고 있는 걸까. 실은 네가 용서해주길 바란 걸지도 모른다는데까지 생각이 닿자 밀려오는 구역질을 참지 못했다. 테이블을 짚고 바닥에 말간 액을 토해냈다. 몸이 자꾸만 떨렸다. 정말, 내가 그런 생각을 한 건가? 그럴리가 없어. 하지만, 그렇다면 왜 너를 놓지 못하고 있는 거냐고, 스스로 납득할만한 답을 내지 못해 다시 눈물을 흘렸다. 엉망이 되었을 낯으로 너를 본다.)
케인, 케인 데이븐포트. 솔직하게 말할게요. 난 14년 전, 아니, 17년 전부터 지금까지 바뀐게 하나도 없어요. 여전히 인생 낙오자에 쓰레기고, 자기합리화할 구석만 찾는데다가 제 편할 곳에 다리 뻗으려고 애쓰는 이기적인 놈이라고요. 덧붙이자면 위선자가 되었을 뿐이에요. 내가 조금이라도 바뀐 것 같았다면, 그건 착각이라고 알려주려고요. 그냥 내버려두세요. 어떻게든 알아서 살겠죠. 당신이 원하든 말든 시시때때로 당신을 떠올리면서, 과거를 돌이켜 불평만 내뱉고. 별로 놀랍지도 않잖아요? 이제 됐어요. 대화는 끝이에요.
(떨리는 손을 뻗어 스크린을 붙잡는다. 닫으면 그만인데, 마치 네 답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손 끝에 힘을 주기만 한 채였다.)
케인 데이븐포트:...서건우 씨.
(이 이름이 그의 행동을 잠시라도 멈추겠지. 하며 그를 나지막히 불러본다. 정신이 돌아오고 나서... 아니, 여러 의미로 제대로된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아마도 처음이겠지.)
우리 이렇게 제대로 대화 해본 적 없잖아요. 항상 화나있거나, 울부짖거나. 그냥... 그런 일방적인 대화밖에 없었어요. 당신도 알잖아요. 이만큼 대화한 건 당신이 충분히 변했다는 의미에요.
이렇게 정상적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것 자체가 예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 처럼 살고 싶다는 의지라고 생각해요, 저는...
물론 과거에 한 짓은 한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인 걸 누구보다 제가 더 잘 알고 있잖아요. 하지만... 이제 안 그럴 걸 알아요. 죄책감에 살아갈 것도 잘 알아요. 아예 벗어날 수는 없겠죠. 그래도 조금이나마... 다른 사람에게 고민도 털어보고 기대어보고 과거의 일을 내려놓는다면 적어도 저처럼 힘들게 살진 않을 거에요.
... ...당신 약속 잘 지키잖아요. 지금까지 안 죽은 거 보면...
케인 데이븐포트:이 약속도 어쩔 수 없이 지키겠죠.
저는 누구보다 당신을 잘 아니까...
서건우:… (맥없이 힘이 풀린다. 서건우, 이름 석 자를 불린 것만으로. 지치지도 않는지,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속에 들어온 것처럼 갑갑한 숨도 마찬가지였음에도, 꼭 뭔가를 내려놓은 것처럼…. 잭이라는 이름 하에 일어난 모든 일은 벽을 세워 나와는 관계 없다고 미뤄두었지만, 막상 서건우라는 이름을 알린 그 몇 안되는 사람을 죄다 실망시켜놓고도, 이름이 불리기를 원했다. 너무 나약해서 혼자는 살아갈 수 없으면서도 주변인들을 죄다 내쫓고 마는 사람. 그게 나였고, 이 또한 여전했으나, 네게 이름이 불려서… …)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선택을 해.
(짤막하게 내뱉고서 화면에서 손을 떼었다. 양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온통 축축한 것을 문질러 닦아내고… 시선을 마주한다. 깜빡, …깜빡.)
…난 누구보다도 네가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만히 보면 네가 제일 바보 같아. 첫번째로는 내가 힘들지 않기를 바란 점이고, 두번째는 내가 살아있는 게 마치 너와 한 약속 때문이라고 생각한 점이고, 세번째로는… … (내 이름을 불러주었기 때문이라고. 굳이 전하지 않은 채 입을 다물었다.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네가 나를 어떻게 안다고. 그럼에도 반박하지 못한 것은 네 의견에 어느정도 동조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말해둘게. 난 나를 평생 용서하지 않을 거야. 삶에 익숙해져 무심코 너를 잊은 순간이 오면 스스로 자학하며 죄책감을 불러일으킬 거고. 내가 죽을 때까지, 죽는 그 순간에도 너를 떠올리겠지. 어쩌면, 이렇게 죽고 나서 내가 또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그 때에도 마찬가지로. 실망은 네 몫이야, 케인. 알아들겠어?
케인 데이븐포트:하하... 알겠어요. 뭐,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이런 것 갖고는 실망하지 않아요. 그게 당신의 버릴 수 없는 짐이라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아니까...
(만약에, 카일이 내가 한 말과 같이 똑같은 말을 했다면 앞에 있는 이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후회심을 느끼는 가해자는 어쩔 수 없는 걸까, 하며 생각한다. 끝까지 그 후회와 속죄를 여러 번 되뇌이며 삶을 살아가는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올까요?
저는 오늘 여기서 제대로 된 끝을 부탁하려 하는데...
화면에 창이 하나 띄워집니다.
모든 파일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케인 데이븐포트:선택은 당신의 몫이겠죠. 근데 저는... 이렇게까지 저를남기고 싶지 않아서요.
서건우:…우리, 처음 만났을 때는 그래도 멀쩡하게 대화를 나눴었는데. (감히 '우리'라는 단어를 써도 괜찮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좋은 사이라고 첫만남을 되짚으며 회상씩이나 하는 건지, 이 마저도 어처구니는 없겠지만. 문득 네 말에 떠오른 말을 내뱉는다. 이렇게 오래토록 네 눈을 마주보았던 때가 있던가. 눈을 감았다 뜨는 것이 점점 느려지다 못해 멈춘 채 한참동안 시선을 마주했다. 이 또한, 그 모든 것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처럼 네 위로 창이 하나 띄워졌다. 모든 파일을 삭제하시겠습니까? 힘없는 웃음이 새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다시금 뺨을 적신다.)
넌 참, 영악해…
(사실은, 너를 다시 열어볼 생각까지는 없었다. 세상에 자신을 더 남기고 싶어하지 않는 너를 알기에, 연결하지는 않겠지만… 이는 그런 것과는 궤가 다른 것이었다. 휘청. 사는 내내 제대로 걸어본 적 없어 앞으로도 역시 비틀댈 내게 기댈 구석이 남지 않게 된다해도, 별 수 있겠는가. 네가 원한다는데. 자판 위의 터치패드에 손을 얹으면, 화면 위의 커서가 움직였다. 한 번만 더 두드리면 모든 것이 영영 사라질 것이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뱉었다가… …)
…케인, 미안해요. 여전히 기만이겠지만, 이제 다 끝났으니 당신도 모든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해지길 바라요. 행복까진 바라지 않을테니, 편안해지기를. 죽음에도 끝없는 괴로움과 외로움이라는 건, 너무 서글프니까.
(그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사라질 데이터일 뿐이지만, 네가 나에게 바랐듯이, 나도 너에게 바랐다. 화면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말을 잇는다.)
잘 가요, 케인.
이 데이터를 쌓아 올리기까지 49년이 걸렸겠지만, 우습게도 전부 삭제하는 것은 몇 초면 충분합니다.
케인 데이븐포트의 삶도 그랬죠.
아주 공들여 쌓은 삶은 덧없이 무너졌습니다.
마우스를 딸깍여 버튼을 누릅니다.
초록색 바가 바쁘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며, 포맷이라는 건 어쩐지 망각과 닮은 단어라는 감상이 스칩니다.
초록색 바가 다 채워가기 직전에, 그는 당신에게 마지막 말을 남깁니다.
케인 데이븐포트:... 완벽한 작별인사네요.
잘 지내요.
간단한 망각이고, 간단한 추모입니다.
시대에 걸맞은 아주 간편한 장례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록색 바가 끝까지 채워지고 외장하드 안에 있는 파일들은 깨끗하게 삭제되었습니다.
이로서 케인 데이븐포트는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장례식을 마치며,
당신은 본체에서 케이블을 분리합니다.
ending. 꿈과 똑같던 마지막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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